역사

기독교 공인 이전, 로마제국의 신앙과 종교적 다양성

지식과지혜 2024.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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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시대의 종교 갈등은 로마제국으로 인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글의 말미에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또한 현 시대의 교회에 대한 비판도 설명하겠지만 우선 당시 로마제국에 대한 이해를 위한 설명을 보겠습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에서 공인되기 이전, 이 제국은 수많은 다신교적 신앙과 다양한 종교적 관습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로마의 고대 종교와 그 문화적, 사회적 역할을 탐구하며, 초기 기독교와의 관계를 조명합니다.

로마제국 연출
로마제국 연출


로마 제국, 종교의 용광로

로마 제국은 지리적으로 광대하고 문화적으로 다양하여 여러 지역의 종교와 관습을 흡수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로마의 종교적 특징은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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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교적 신앙 체계

로마제국은 본래 다신교를 기반으로 발전했습니다.

  • 로마의 주요 신들인 유피테르(Jupiter, 주피터), 유노(Juno, 유노), 미네르바(Minerva, 미네르바)는 도시 국가의 보호자로 여겨졌습니다.
  • 신화 속 신들은 인간의 생활 전반에 깊이 뿌리내려 있었습니다. 예컨대 바쿠스(Bacchus, 디오니소스)는 축제와 술의 신으로, 로마인들에게 중요한 사회적 의식을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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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 지역의 신들 통합

로마는 정복지의 신들을 받아들여 자신의 신앙 체계에 통합했습니다. 이는 통치 안정화를 위한 전략적 수단이었습니다.

  • 이시스(Isis, 이시스)와 같은 이집트의 여신 숭배는 로마 시민들에게도 사랑받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 이러한 융합은 로마의 종교적 다양성과 개방성을 잘 보여줍니다.

한 경험담

한 로마 시민은 유피테르 신전에 기도하면서도, 이집트 신전에서 이시스에게 헌물을 바쳤습니다. 이는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던 로마의 일상을 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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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숭배: 종교와 정치의 결합

황제 숭배의 등장

로마에서는 황제를 신성화하고 숭배하는 황제 숭배가 중요한 종교적 관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황제 숭배는 국가의 통합을 상징하며, 제국 내에서 충성심을 고취하는 수단이었습니다.
  • 특히 아우구스투스(Augustus)는 "신성한 자"로 칭송받으며 황제 숭배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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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시각

일부는 황제 숭배를 강압적인 정치적 도구로 보았습니다. 실제로 초기 기독교인들은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것을 거부하며 박해를 받았습니다.

정치적 종교의 영향력

황제 숭배는 종교와 정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 로마인들에게 황제 숭배는 애국심의 표현이었지만, 제국 외곽의 정복지에서는 이를 억압적인 강요로 인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신비 종교들

신비 종교의 정의

로마 제국에는 신비 종교(Mystery Cults)라는 독특한 형태의 종교가 있었습니다. 이는 공개적으로 수행되는 로마 전통 종교와 달리, 비밀 의식과 개인적 체험을 강조했습니다.

대표적인 신비 종교

  1. 미트라교(Mithraism, 미트라교)
    • 태양신 미트라(Mithras)를 숭배하며, 주로 군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습니다.
    • 미트라교는 비밀스러운 의식과 계급 구조로 인해 폐쇄적인 성격을 띠었습니다.
  2. 디오니소스 숭배
    • 술과 희열의 신 디오니소스를 중심으로 한 종교로, 대규모 축제와 열정적인 의식을 통해 신과의 합일을 경험했습니다.

신비 종교의 매력

이 종교들은 개인의 내면적 체험과 영적 성숙을 강조하며, 많은 로마 시민들에게 위안을 제공했습니다.

  • 신비 종교는 제국 내의 정신적 공허함을 채워주었습니다.

사례

한 로마인은 디오니소스 축제를 경험하며 말합니다.

"이 축제를 통해 신과 하나가 된 듯한 희열을 느꼈습니다."


기독교와의 초기 갈등

로마 종교와 기독교의 차이점

로마의 종교는 다원적이었지만, 기독교는 유일신 신앙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 초기 기독교인들은 다신교와 황제 숭배를 거부했습니다.
  • 이는 로마 정부와의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박해의 역사

네로 황제 시절, 로마 대화재의 책임이 기독교인에게 전가되면서 본격적인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 그러나 기독교는 박해 속에서도 강한 결속력을 보이며 확산되었습니다.

종교적 공존의 실패와 변화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까지, 로마의 종교는 기독교와 긴장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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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종교의 유산

현대에 남긴 영향

로마의 종교는 현대 유럽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 많은 로마 신화와 의식이 유럽 문화와 예술에 반영되었습니다.
  • 심지어 기독교도 로마 종교의 의식적 요소를 일부 받아들였습니다.

역사적 교훈

로마 종교의 다양성과 통합의 정신은 오늘날 다문화 사회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결론

기독교 공인 이전의 로마 제국은 다신교, 황제 숭배, 신비 종교 등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종교는 로마 사회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으며, 정치와 문화, 심지어 초기 기독교에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로마의 종교사를 이해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종교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로마제국은 현 시대 종교갈등의 원흉

위 본문에서도 있듯이 당시 313년 밀라노 칙령 이전의 로마의 종교는 기독교와 긴장 관계를 유지했다고 했습니다. 이 칙령을 기준으로 로마제국의 종교는 기독교로 획일화 됩니다. 이 기독교는 황제권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고, 실제로 황제의 신적 권위를 드러내기 위하여 기독교를 이용합니다. 당시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한 목적도 방대한 영토의 로마제국을 정신적으로 묶기 위한 정책이었고, 기독교는 교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황제 입맛에 맞추기 쉬운 위력이 없던 종교였습니다. 당시 강력하던 종교세력의 종교를 국교로 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 종교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에 황제 입맛대로 할 수가 없으므로 당연히 제외됐고, 따라서 가장 세력이 약했던 종교를 취한것이 기독교였던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냥 황제가 자기 좋으려고 취한 것 뿐입니다.

 

실제로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한 이후, 이전에도 그랬으나 더욱 황제를 신격화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황제의 말씀은 곧 신의 말씀으로 여기도록 하였습니다. 이게 다 역사에 나옵니다. 즉 황제는 이럴려고 기독교를 국교화 한겁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 기독교가 가장 세력이 약했기 때문에 선택된 것 뿐입니다.

 

국교화 된 이후로 기득권이 되버린 기독교는 마치 뻐꾸기와 같이 기독교 이외의 것을 전부 처단합니다. 상당히 저질이죠. 그리고 기독교의 교리 또한 수정 및 편집을 하게 되는데, 이때 황제가 동참하여 감리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니케아 공의회입니다. 물론 다른 공의회에도 황제가 참석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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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불가한 것은, 종교회의에 종교인만 가면 그만인 것을 어째서 황제가 참석을 했을까요? 역사를 보면 황제가 참여한 것은 그저 구경하기 위함이 아니라, 황제가 교리에 대한 간섭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황제는 곧 신의 아들이므로, 성경으로 정리를 할때, 대응되는 논리를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전지전능하듯 황제도 전지전능하도록 편집을 지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에 어긋나는 부분의 성경은 제외가 되었습니다. 현재 그 칼질에서 피해간 성경문서 중 일부가 사해사본입니다.

그것을 무시한채 현재 교회의 목사 또는 역사는 모르고 성경책만 봤다는 교인들은 사해사본과 같은 기타 성경문서를 전부 폄하합니다. 왜 받아들일줄 모르나요? 겁나요? 무서워요? 기득권에서 짤릴까봐? 정신차리세요 많은 교회사람들아. 이래서 종교는 망하게 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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