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토는 어쩌면 미래에 또 다시 생길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인 통제를 위한 게토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한 게토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하여 글의 말미에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게토가 무엇인지 기본적인 설명을 보겠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게토는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라, 생존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공간으로 기능해왔습니다. 이 글에서 게토의 역사와 유대인 사회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겠습니다.
게토의 기원: 강제 거주 지역의 탄생
"게토"라는 용어는 16세기 베네치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특정 지역에 강제로 격리되었으며, 이를 통해 교회와 국가가 유대인 인구를 통제하고자 했습니다. 게토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상징이자, 동시에 그들만의 독자적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게토의 설립은 단순한 사회적 고립이 아닌, 유대인 정체성을 억압하려는 제도적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 안에서 자신들의 문화를 보호하며, 종교와 전통을 이어갔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의 안식일 전통은 게토 내에서도 철저히 지켜졌습니다. 게토에서의 어려운 삶 속에서도 안식일 저녁마다 촛불을 밝히며, 신앙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 그런 예입니다. 물론 전부가 그렇게 지켰을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게토의 삶: 고난과 문화의 공존
게토의 삶은 제한적이었지만, 유대인들은 그 안에서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그들은 제한된 자원 속에서도 교육과 종교적 예식을 유지하며, 공동체 의식을 강화했습니다.
중세 유럽의 많은 게토에서 유대인들은 독자적인 학교와 회당을 설립했습니다. 이는 그들의 정체성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반면, 외부 세계와의 단절은 경제적 어려움을 심화시켰으며, 유대인들은 주로 대부업이나 소규모 상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제약은 게토를 더 부정적으로 보이게 만들었지만, 유대인들은 이를 통해 강한 생존력을 길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현대 사회에서 만약 누군가가 통제된 상황에 놓여 있을경우가 있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홀로코스트와 게토: 생존의 최전선
20세기 초,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탄압하며 게토를 다시금 도입했습니다. 바르샤바 게토는 그 중 가장 악명 높은 예로, 수만 명의 유대인이 열악한 환경에서 생존해야 했습니다.
나치 게토는 중세의 게토와는 달리, 단순한 격리뿐 아니라 대량 학살의 전초기지 역할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극심한 식량 부족과 비위생적인 환경 속에서도, 가능한 한 저항과 생존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바르샤바 게토 봉기는 그들의 생존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무장과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유대인들은 나치에 저항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게토: 차별에서 연대의 공간으로
오늘날, "게토"라는 단어는 종종 소외된 지역이나 빈곤한 이웃을 지칭합니다. 그러나 유대인 역사에서 게토는 단순한 빈곤과 고립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것은 강한 정체성과 연대의 공간이었습니다.
현대 유대인 사회에서는 게토의 역사를 통해 과거의 고난을 기억하며, 새로운 세대에게 정체성과 신앙의 중요성을 가르칩니다. 게토는 고통의 역사이지만, 동시에 인간 정신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게토의 역사는 단순히 유대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소외된 이들이 어떻게든 고난을 극복할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게토가 남긴 교훈
게토는 유대인들에게 고난의 상징이자, 생존과 정체성의 표상이었습니다. 과거의 게토는 차별의 산물이었지만, 그 속에서 유대인들은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며 신앙과 공동체를 지켰습니다.
오늘날, 게토의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차별 속에서도 정체성을 지키는 법, 공동체의 가치를 발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사례입니다.
미래에 나타날 게토
여기서 말하려는 미래는 아주 먼 미래가 아닙니다. 현재가 2024년도이니 2100년이 넘어가기 전에 다 완성이 되어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될것으로 보여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예언이나 예측이 되겠습니다. 게토의 목적에 대한 것은 위의 본문에서 설명이 되어 있으니 따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우선 과거의 게토로 인해 가장 고통을 많이 받은 민족은 유대인입니다. 어떤 이유로 그들이 게토에 통제되어야만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명분상으로는 늘 유대인의 악행으로 인해 지구의 쓰레기로 여겨지면서 그렇게 된것으로 알고 있지만, 명분상 그런것이고 실제로는 다른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 비밀스러운 부분까지는 일반인이 알 수가 없으므로 생략합니다.
그럼 어째서 미래에 또 다시 게토가 나타날 것이며, 그것은 유대인이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한 게토가 될 것이라고 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유대인의 현 위치, 사상과 사고방식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이제 자본주의 시대에서 가장 유력하게 잘 적응하는 종족입니다. 그 어떤 종족보다 가장 자본을 잘 이해하는 종족이죠. 그러므로, 유대인은 돈에 대하여 가장 천재적입니다. 모든 경제에서 유대인을 빼고 설명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즉, 유대인은 자본주의의 핵심세력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현 시대에서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주인인 셈입니다.
유대인에게는 특이한 규칙 같은것이 있습니다. 유대인이 유대인으로부터 물건을 훔치거나 해를 입히면, 동일한 해를 입히거나 또는 경우에 따라 그 벌을 삭감하거나 돈으로 대응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유대인 끼리인것이고, 이방인의 경우라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유대인의 사고방식
유대인에게 이방인이 어떤 해를 끼치면, 그것의 10배를 철저하게 되갚는다. 이것이 그들의 사고입니다. 왜 그러냐면,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라고 맹신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기들만 사람이고 나머지는 사람의 탈을 쓴 노예수준의 인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에게는 의무가 있습니다. 자기들이 선택되었다는 착각에 빠져있기 때문에, 지구인을 선도할 의무감이 있다고 여깁니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게토는 앞으로 유대인이 이방인을 관리하기 위한 통제구역으로 사용되게 됩니다. 물론 그 게토라는 틀이 작을 수도 클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은 동일합니다.
메타 게토
마침 이 시대는 통제사회로 가고 있으며, 전 세계가 하나의 통신망으로 다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한 기업의 중심 세력은 당연히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이 아닐지라도 그것의 자금원은 유대인입니다.
결국 유대인의 의지대로 세계는 디자인 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유대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가고 있는 셈이죠.
그러므로, 미래의 게토는 표면상으로 보면 게토처럼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온 세계의 인구가 전산망에 갇혀서 살게 될 것입니다. 메타 게토가 되는 것이죠.
대책
이런 일이 없어지려면, 지구 대 재난밖에 남은것이 없을것 같습니다. 또는 유대인의 보수적인 교육방식이 바뀌게 된다면 가능하게 됩니다. 마치 서양세력이 한국의 고대역사를 지우기 위해 한국 내에 고대역사에 대한 나쁜 인식을 심어서, 단군을 신화로 전락하게 하거나, 단군을 말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느끼게 만들거나, 한국땅이 중국에도 있었다 하면 미친사람으로 보게 한다던지, 그런 식으로 선동을 한것과 같이, 유대인에게도 동일한 방법으로 한다면, 유대인도 그 명맥이 끊어질 것입니다. 그런일은 생기지 않을것 같지만 그래도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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